지난 포스팅에서, 지속가능 웹생태계의 특징 또는 원동력으로 웹생태계의 민주성에 대해서 말했다. 흔히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의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고 말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말하고 즐기는 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한 가능성은 지난해에 입증되었다. 2008년도의 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 및 그 후의 촛불집회 등을 통해서 단순히 인터넷 공간에서만 활발히 활동하던 오타쿠적인 사람들의 방 밖으로의 엑소더스와 그 후 현실에서의 즐김의 문화를 만든 것은 인터넷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연구로 남을 것이다. 인터넷 인간들의 실생활로의 확장은 역으로 인터넷 공간에서의 삶의 확장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각설하고, 이 글에서는 인터넷의 확장이 민주주의 재도약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포스팅의 목적인 과연 인터넷 공간/웹생태계는 과연 민주적인가?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특히 현재 인터넷의 대표주자인 구글, 그리고 (아직까지는) 구글을 대표하는 웹문서 랭킹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가 웹생태계에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런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내의 여러 서비스에 적용된 민주적 추천시스템들 (아고라의 찬/반 투표블로거뉴스의 추천 등)이 과연 민주적으로 구현되었고, 그런 바탕에서 베스트 글들의 선정이 과연 정당한 결과인가 등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

 구글 페이지랭크와 인터넷 민주주의
An Illustrative PageRank Diagram

페이지랭크의 설명예 (출처: 위키피디어)

 구글의 페이지랭크 PageRank 알고리즘에 대한 기술적, 수학적, 또는 프로그래밍적인 설명을 굳이 이 공간에서 다시 다룰 필요는 없을 것같다. 간단히 개념적으로만 설명하자면, 많은 웹 문서들에 의해서 hyperlinked된 웹 문서는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적게 링크된 문서들보다 높고, 또 상대적으로 중요한 웹 문서에 의해서 링크된 웹 문서가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중요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페이지랭크의 기본 구조이다. (참고로, 수리적으로 Stochastic Markov 모델과 Random Surfing 모델 등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MapReduce 알고리즘으로 알려진 분산처리기술로 대용량의 웹문서들 간의 상대적인 중요도가 구해지고 있다.) 그런데, 초기의 페이지랭크가 민주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많은 문서들로 부터 링크된 (즉, 다른 문서들로부터 추천된 또는 투표된) 웹 문서의 중요도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즉,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서 대표로 선출되는 방식이 현대의 대의 민주정치에서 대표을 선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두번째 속성인 중요한 문서에 의해서 링크된 문서의 중요도가 증가한다는 점은 완벽한 평등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런 불평등이 현실의 모습 (힘있는 자들의 정치)을 더 잘 구현한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주의의 이상/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웹생태계 파괴자들에 의한 정보의 왜곡은 분명 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악성 문서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 옆의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B와 C 사이의 상호추천도, 경우에 따라서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악의가 없이) 친구끼리 서로 추천해주는 행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영향력이 있는 웹 문서들끼리 서로 카르텔을 형성해서 웹생태계에서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특수 이익집단이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참고로, 현재의 구글검색에서 PageRank에 대한 의존도가 초기만큼은 크지가 않다. 즉, 구글 검색에서의 웹 문서 랭킹은 더이상 페이지랭크로 한정지을 수 없고, 구글랭크라고 불르는 편이 더 맞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지랭크가 웹생태계의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초기의 신화는 어느 정도 재조정될 필요도 있다.

 민주적 방법에 의한 웹 페이지들의 랭킹이라는 초기의 이상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터넷 민주주의는 희망이 있다. 더 많은 웹 문서들이 생겨날 수록, 이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웹 문서들이 서서히 그 위력을 잃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들이 Power Law를 따르기 때문에 기존의 영향력있는 웹 문서들에 대한 선호 경향 Preferential Bias을 이용해서 네트워크의 허브로의 발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단순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에 어렵다는 점을 반증한다. 그래서 웹생태계의 (풀뿌리) 대중 민주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편중된) 영향력을 분산시키거나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그런 대항력은 Sum of Power로 수식화되는 입장에서, 몇몇의 대규모 웹 소스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소규모 웹 소스들이 조직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웹생태계에서의 진정한 민주성의 회복은 자발적 개인들의 참여와 협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명시적 추천 시스템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이 웹생태계의 암묵적 추천 시스템이라면, 다음 블로거뉴스이나 digg.com의 추천버튼이나 다음 아고라의 찬/반 버튼 등의 명시적 추천 시스템은 과연 민주적인가 비민주적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추천버튼이 공개되어있고 추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민주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모든 대중들이 모든 웹문서들을 공평하게 조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주적인 것만 아니라고 할 수가 있다. 후자의 주장에서, 모든 대중이 공개된 모든 문서들을 볼 기회/권한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어떤 기준들에 의해서 선별된 웹문서들만을 조회하고, 추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즉, 블로거뉴스나 아고라에서 베스트글로 선정된 문서들은 그렇지 않은 문서들보다 조회 가능성, 그래서 추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이다. 웹문서의 조회나 추천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지난 암울했던 반세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개념으로 '평등'이라는 것은 사회/공산주의에 더 어울려서,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속성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해둘 점은 사회주의에서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 (비약적으로 말해서, 모든 문서의 조회수와 추천수가 동일해야 한다)에 가깝지만,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 (즉, 모든 문서들이 열람 가능하지만 똑같은 수만큼 조회/추천할 필요는 없다)에 가깝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렇지만 현재의 웹생태계의 많은 서비스들이 기회의 평등을 제대로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회의 불평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문서 제목 선택, 글쓰는 솜씨나 레이아웃, 주제의 시의/적정성 등과 같은 게시자의 능력이나 기존의 인맥이나 전문성 등과 같은 게시자의 명성/평판 등에 의한 (문서 열람) 기회의 불균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개념으로 본다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때로는 추천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한 기회의 불균등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노출된다거나 한 번 이상의 추천을 받은 웹문서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들에 비해서 일반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인위적인 부정클릭을 통한 추천수를 조작한다거나, 특정 키워드 (때로는 해당 웹문서와 관계가 없는 키워드)를 반복해서 검색엔진의 매칭점수를 높인다거나 거짓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페이지랭크 값을 변형시키는 그런 시도들이 있었고,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웹문서의 중요도를 평가하는데 모든 추천자들의 추천이 동일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페이지랭크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문서들에 의해서 링크된 문서들이 더 큰 점수를 부여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또 페이지랭크에서 상호링크와 경우와 같이 일반적인 추천시스템에서도 친구들끼리 상호추천을 하는 등의 노이즈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현재의 명시적 추천 시스템의 한계에 해당한다. (전자의) 일례로, 현재 다음의 블로거뉴스의 오픈에디터/열린편집자로 선정된 이들의 추천이 그렇지 않은 일반 대중들의 추천보다 베스트글을 선별하는데 더 큰 효과를 주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그리고, 때로는 추천 시스템에서의 팬덤현상도 주의해야 하다. 특정 게시자의 명성에만 의존해서 그들의 웹문서의 내용과 상관이 없이 무조건 조회/추천을 하는 현상도 존재하며, 특정 주제에 대해서 웹문서에 선호추천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례로, '미네르바'라는 아고라의 논객의 글에 대해서 팬덤현상을 일으킨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 여전히 검찰/사법부의 이상한 행동은 여전히 이해불가이며, 웹생태계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던질 뿐이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단지 팬덤현상이라는 측면에서 예로 든 것이다.)

 인터넷의 기본은 정보를 담은 웹문서들과 그것을 저작하고 즐기는 인간들 사이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렇지만 모든 피어 (peer, 웹문서 및 사용자)들이 모두 동일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이나 중요도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TF/IDF를 이용한 Okapi BM25라던가 구글의 페이지랭크 (애스크의 엑스펄트랭크나 트러스트랭크 등 포함) 등의 웹문서 랭킹 알고리즘이 개발되기도 하고, 더 명시적으로 사람들의 추천행위를 이용한 웹문서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알고리즘/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다. 보통의 경우, 이런 랭킹 알고리즘들이 충분히 민주적으로 웹문서들이나 또는 사용자들의 중요도/영향도를 측정해주지만, 실제 생활에서 민주주의가 왜곡되듯이 웹생태계에서의 이런 민주적 방법에 의한 웹문서 랭킹 방법도 왜곡을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왜곡현상을 방지 또는 최소화하기 위해서 인터넷 업체들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우리 일반 사용자들의 이성적 활동 외에는 뽀죡한 방법이 없다.

 글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감이 있지만, 웹생태계에서의 민주성을 해치는 행위는 나 자신의 자율성 및 민주성도 함께 해치는 행위가 될 것이며,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다음 포스팅은 웹생태계에서의 자원의 재활용 문제나, 지속가능한 추천시스템에 대해서 적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 때는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개인블로그에서 이 책의 저자 토마스 L. 프리드먼을 세계화의 전도사 Globalization Evangelist에서 세계 환경론자로의 극적인 변신이라고 평을 내렸다. 토마스 프리드먼의 내면의 세계가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의 무분별하고 강대국 위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록 토마스 프리드먼에 대한 비판도 커져만 갔는데, 극적인 반전의 토대를 이룬 것같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굳이 따로 설명을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그렇지만 이 책이 내가 이 블로그 SubEco를 개설하는 동기를 제고해줬다는 것을 고백할 필요는 있을 것같다.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에 대해서 다양한 소스로부터 자주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지속가능성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없었던 것같다. 단순히 지구온난화의 해소, 세계 대재앙 오염으로부터의 탈출, 그린 지구로의 복원 등과 같은 구호는 단순히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었고, 앞으로의 나의 행동이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복원이라는 주제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웹생태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과연 우리의 웹생태계/사이버 스페이스는 과연 제대로된 공간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작은 노력과 실천으로 어머니 자연은 고유의 그린 생태계로 변화될 수가 있다면, 우리가 매일 연결된 또 다른 생태계인 웹생태계도 어머니로의 회귀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후로, 뜻이 있는 이들을 규합해서 SubEco라는 NGO를 만들어볼까? 그런데 어떻게 만들지? 등과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이 SubEco라는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이었고,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나 세계 도처의 자료들을 수집해서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 이런 허무맹랑해 보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글을 하나 둘씩 적어나갈수록 더욱 부담감을 느낀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내가 뭐가 잘 났다고 이런 이상을 꿈꾸고 실천하려하는가라는 자괴감도 느낀다. 그리고, 부족한 글 솜씨로 이 블로그의 글들을 보실 많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느낀다. 부족하지만, 힘이 없지만, 그래도 난 믿는다. 우리의 생태계를 더욱 푸르게 만들어 나가듯이 우리의 웹생태계도 더욱 푸른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욕설이 난무하고 성인, 도박 등을 방조하여 우리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그리고 이웃의 재산권이나 프라이버시 등을 해치는 그런 검은 인터넷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가 넘치고 지식의 보고/바다로써, 그리고 언제나 쉽게 접근해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투명한 인터넷을 꿈꾼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는 예화가 있다. (책에서 언급되는 것같다.) 개구리를 이용한 유명한 실험이 있었다. 개구리를 용기에 넣고 갑자기 뜨겁게 달구면 개구리는 용기 밖으로 나올려고 날뛴다고 한다. 그렇지만, 개구리를 용기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증가시키면 개구리는 온도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높아진 온도에 적응을 해가고, 결국에는 아무론 저항도 없이 최후를 맞이한다는 실험이 있다. 우리의 생태계도 이와 비슷하게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고 오염이 만연하고 자연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파괴되는 것이 비단 자연 뿐이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접근해서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인터넷 세상, 즉 웹생태계도 이렇게 점진적으로 파괴되어가고 있다. 왜 우리는 아직도 그 파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저항없이 용기 안에서 죽어가는 개구리가 당신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토머스 L. 프리드먼 (21세기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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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점에서 본 주제에 대한 시리즈 연재 계획은 없지만, 이 글이 이 주제에 대한 완결편은 아니다. 앞으로 다양한 새로운 내용이 발견/생각되면 (같은 제목으로 또는 특정 주제에 맞는 제목으로) 계속 추가할 예정입니다.

웹생태계 파괴자들
 이전 포스팅에서 웹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 또는 결과물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였습니다. 1) 인신공격, 허위/과장사실 유포, 개인정보 유포와 같은 명백한 범법/위법 행위 (또는 결과물); 2) 성인물, 도박유도, 무분별한 욕설이나 비방 등의 우리 사회 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 3) 원 저작자의 권리인 저작권이나 개인들의 초상권 등과 관련된 개인의 재산권을 해치는 행위; 4) 낚시성 글이나 무의미한 중복된 내용을 공용 공간에 올려서 웹생태계의 리소스를 남용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용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행위; 그리고 5) 광고성 글들과 같은 비순수 목적을 가진 글들을 무분별하게 배포하는 행위 등을 현재의 웹생태게를 해체는 주요 웹생태계 파괴자들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파괴자들을 대항해서 원래의 웹생태계의 모습 또는 처음부터 의도되었던 인터넷 및 사이버 세상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노력 또는 지속가능 웹생태계를 가능케하는 동력들에 대해 본 포스팅에서 논의해보려합니다.

웹생태계의 특징 및 인위적 복원의 위험성
 또, 지속가능 웹생태계와 특징을 나열한 글에서 건전한 웹생태계의 특징으로 자발성 spontaneity, 자기정화 self-healing, 종의 다양성 variety 등의 특징을 말한바 있다. (이들 특징에 대한 자세한 기타 설명들은 다시 논의될 것이다.) 이런 특징들이 말해주는 것은 현재 웹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웹생태계의 본질을 망각하는 행위들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인터넷 게시물들에 대한 '최진실법'으로 명명된 사이버 모독죄의 신설을 통해서 인위적/강제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나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분명히 지켜져야 하겠지만) 저작권법의 강화를 통해서 위법자들에게 민형사상의 큰 손해를 주어서 저작권 및 초상권을 해치는 행위를 근절하려는 움직임 등은 큰 실효성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웹 생태계를 구축/복원하는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속가능 웹생태계 복원의 장애물들에 대해서도 추후에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그리고, 국내의 다음 커뮤니케이션이나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회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저작권 보호 캐페인에 동참해서 저작물들의 불법유통 및 사용을 줄이고 네티즌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노력은 앞서 언급한 법적 제재를 통한 방법보다는 나은 실효성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이런 업체 중심의 정화 캠페인도 역시 대다수의 네티즌들의 호응을 제대로 불러일으키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또 다른 제재수단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그리고 업체의 일방적인 불법 게시물의 블라인드처리나 삭제 등의 행위는 오히려 많은 네티즌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듯이 웹생태계의 시작단계부터 웹생태계는 자생적으로 출현하고 (물론, 초기의 아르파넷에서의 군사연구나 20세기 후반부의 대중화 및 상업화 [특히 닷컴붐 및 버블]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자발성을 그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생태계의 유기체들이 그러하듯이 웹생태계 역시 자가치료 또는 자기 정화 기능을 발휘한다. 아래에서 계속 언급하겠지만, 이런 자발성과 자기정화 능력이 현재와 미래의 지속가능 웹생태계의 구축의 주요 추진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종들이 가지는 의미는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구성요소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웹생태계를 정화하는 노력이나 방법의 다양성도 내포한다. 즉, 정부나 업체들의 인위적이고 일률적인 웹생태계 정화 방법 및 시도는 근본적으로 웹생태계의 다양성이라는 주요 특징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 달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웹생태계 복원의 핵심 동력들
 그렇다면, 어떠한 동력에 의해서 웹생태계가 건전하고 신뢰를 바탕에 둔 지속가능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자. 본 포스팅에서는 일단 3가지만 생각해보기로 하자. 즉, 자발성, 민주성, 다양성이 본원의 웹생태계가 가진 고유 속성이며 이런 속성들이 제대로 발현되면 (또는 이런 속성들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서) 지속가능한 웹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물론, 제시된 3가지 속성만으로 지속가능 웹생태계를 완벽하게 복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도 아니고, 또 완벽한 배타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바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관점에 따라서 이들 속성들 사이에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특정 소성이 다른 속성의 하위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자발성 spontaneity
 가장 먼저 제시된 개념은 자발성이다. 자발성이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순수한 의도에 따라서 개인이 가진 작은 힘을 전체 생태계의 발전과 진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개발 초기 (물론, 군사적 목적에 의해서 시발은 되었지만)부터의 인터넷 역사를 보면 순수한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 통신 및 브라우징 기술들이 발명/발전되었고, 또 웹생태계의 주요 구성물인 컨텐츠 또한 전세계의 일반 네티즌들에 의해서 저작, 수정, 배포되어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IT 관련 기술의 개발하고 컨텐츠들을 저작하고 평가하는 이들이 프로페셔널이냐 아마추어이냐에 대한 구분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그런 구분과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게중에는 남들보다 조금 더 유능하거나 조금 더 전문성을 가졌거나, 또는 좀 더 많은 저작활동을 펼치는 개인들도 분명 존재하고, 반대의 개인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내는 개인이라해도 인터넷이라는 다양성의 세계에서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두각을 내는 경우가 많지가 않으며, 한 분야에 서툰 개인이 다른 분야에서는 평균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런 개인들의 순수성과 자발성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창출해낸 주체이며, 또 발전시키는 주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자발성과는 조금의 관점의 차이가 있겠으나 '자기 self-' 속성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가장 많은 예로 든 것이 자기정화(자정, self-healing)이라는 개념이다. 즉, 때로운 웹생태계에 혼탁한 물이 흘러들어오지만 웹생태계를 지킬려는 많은 자발적 참여자들에의해서 잠시동안의 오염이 다시 제거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목격을 했다. 때로는 경찰이나 법 등의 공권력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특수한 몇 건의 경우로 사이버 스페이스 전체의 자정능력을 폄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단기적으로 웹생태계 파괴행위들에 대해서는 정부나 업체들의 강제 제재가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인 부작용들에 단면적인 설레발을 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웹생태계의 자기정화 능력을 신뢰하고 지속가능 웹생태계 구축이라는 원래의 모적으로 인도하는 수준에서의 제재로 충분하다. (일부의 돌출행동으로 인해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피해를 입었다면 그들의 자유오남용을 제재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주는 절차나 규칙이 필요함은 필자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이런 자기정화 뿐만 아니라, 자기조직화 등에서도 자발성의 개념을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성 democracy
 두번째로 생각할 속성은 민주성이다. 민주성이란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작이나 소비 등에서 접근의 평등성이 보장된다거나 웹생태계의 발전의 각 부분에서 순수한 기여를 보장해주는 등의 개념이다. 순수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일대일 수평 관계 (peer-to-peer)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들 간의 집단 및 조직이 형성되는 등의 수직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목격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어떤 이들은 더 큰 권력을 행사해서 다른 이들을 복속시키려는 그런 비정상적인 관행도 생겨났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수직관계란 관리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타나는 폐단 중에 하나로 소위 파워 블로거들이 초보 블로거들의 서툰 행위에 대해서 지나치게 간섭하고 지적하는 행위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는 것같다 (다음의 글 참조, 혹시 이 블로그의 내용이 이런 웹생태계 서열화를 조장한다면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물론 이런 행위들이 순수한 의도에서 앞서 말한 자발성, 즉 자기정화의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사이버 스페이스 내에서의 서열화를 부축일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친 불펌이나 광고행위 등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해서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론 순수성이 오인되면 웹생태계의 민주성이 파괴될 수도있다. 그리고, 민주성에 대해서 다루고 싶은 얘기는 실제 아고라블로거뉴스의 추천시스템이나 글을 발행하는 행위는 모든 네티즌들에게 평등하게 제공되고 있지만, 특정 전문 지식을 가진 집단이나 글재주가 많은 이들에 의해서 여론이 형성/주도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가 있다. 웹생태계의 민주성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일반 네티즌들이 특정집단의 웹권력화에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블로거뉴스의 추천시스템이나 오픈에디팅 제도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민주성에 기반을 둔 그런 추천 시스템을 또한 기대한다. 웹민주성에는 개인 간의 민주성뿐만 아니라, 조직들 간의 민주성도 함께 고려되어져야 한다.

다양성 variety
 마지막으로, 다양성이란 문자 그대로 웹생태계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시각각 그 모습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건전한 웹생태계를 획일화와 거리가 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생태계에서도 유전학적으로 종이 획일화되면 다양한 유전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에는 생태계에서 멸종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웹생태계가 지속가능하려면 늘 새로운 아이디어, 색다른 서비스, 진보된 기술 등의 항상 새로움이 부어져야 한다. 그런 새로움은 기존의 시스템과 차별성을 주면서 또 일관되게 통합되어져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과 통합/조정되지 않은 망나니같은 새로움은 웹생태계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런 다양성을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여년 간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고 또 그것보다 나은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하고 때론 구태연한 서비스들이 종말을 맞이하는 등의 웹생태계는 그 모습을 항상 변화시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수의 집단에서 그들만의 이상이나 이념을 강요하는 여론왜곡현상도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만연해있다. 뛰어난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특수 목적에 맞는 생각이나 행동을 강요하는 그런 파괴행위들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고려되어져야 한다. 다양성을 때론 특수성으로 볼 수도 있다. 특수한 경우에 가장 적합한 것은 기존의 일반적인 것이 아닐 간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성/독특성을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한 듯하다. 물론, 통일성, 일관성, 일반성 등의 개념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다양성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약하면, 지속가능 웹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웹생태계에 참여해서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웹생태계게 기여하는 것의 기회를 균등이 주어져야 한다. 이런 자발적 참여, 민주적 기회 보장, 다양한 개인과 의견의 조화를 통해서 웹생태계는 지속가능한 모습을 이룰 것이다. 

"S = SDV+"

 음, 그로고 보니 '순수성'도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을 것같다.

 이제껏 논의했던 내용은 여전히 많이 부실하다. 앞으로 더 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인다면 조금 더 발전된 생각의 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같다. 혹시 잘못된 표현이나 사실, 또는 추가되어져야할 생각이나 내용 등이 있으면 코멘트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인터넷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깊게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 주제가 바로 이어서 제공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