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지속가능 웹생태계의 특징 또는 원동력으로 웹생태계의 민주성에 대해서 말했다. 흔히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의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고 말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말하고 즐기는 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한 가능성은 지난해에 입증되었다. 2008년도의 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 및 그 후의 촛불집회 등을 통해서 단순히 인터넷 공간에서만 활발히 활동하던 오타쿠적인 사람들의 방 밖으로의 엑소더스와 그 후 현실에서의 즐김의 문화를 만든 것은 인터넷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연구로 남을 것이다. 인터넷 인간들의 실생활로의 확장은 역으로 인터넷 공간에서의 삶의 확장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각설하고, 이 글에서는 인터넷의 확장이 민주주의 재도약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포스팅의 목적인 과연 인터넷 공간/웹생태계는 과연 민주적인가?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특히 현재 인터넷의 대표주자인 구글, 그리고 (아직까지는) 구글을 대표하는 웹문서 랭킹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가 웹생태계에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런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내의 여러 서비스에 적용된 민주적 추천시스템들 (아고라의 찬/반 투표블로거뉴스의 추천 등)이 과연 민주적으로 구현되었고, 그런 바탕에서 베스트 글들의 선정이 과연 정당한 결과인가 등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

 구글 페이지랭크와 인터넷 민주주의
An Illustrative PageRank Diagram

페이지랭크의 설명예 (출처: 위키피디어)

 구글의 페이지랭크 PageRank 알고리즘에 대한 기술적, 수학적, 또는 프로그래밍적인 설명을 굳이 이 공간에서 다시 다룰 필요는 없을 것같다. 간단히 개념적으로만 설명하자면, 많은 웹 문서들에 의해서 hyperlinked된 웹 문서는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적게 링크된 문서들보다 높고, 또 상대적으로 중요한 웹 문서에 의해서 링크된 웹 문서가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중요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페이지랭크의 기본 구조이다. (참고로, 수리적으로 Stochastic Markov 모델과 Random Surfing 모델 등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MapReduce 알고리즘으로 알려진 분산처리기술로 대용량의 웹문서들 간의 상대적인 중요도가 구해지고 있다.) 그런데, 초기의 페이지랭크가 민주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많은 문서들로 부터 링크된 (즉, 다른 문서들로부터 추천된 또는 투표된) 웹 문서의 중요도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즉,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서 대표로 선출되는 방식이 현대의 대의 민주정치에서 대표을 선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두번째 속성인 중요한 문서에 의해서 링크된 문서의 중요도가 증가한다는 점은 완벽한 평등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런 불평등이 현실의 모습 (힘있는 자들의 정치)을 더 잘 구현한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주의의 이상/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웹생태계 파괴자들에 의한 정보의 왜곡은 분명 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악성 문서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 옆의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B와 C 사이의 상호추천도, 경우에 따라서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악의가 없이) 친구끼리 서로 추천해주는 행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영향력이 있는 웹 문서들끼리 서로 카르텔을 형성해서 웹생태계에서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특수 이익집단이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참고로, 현재의 구글검색에서 PageRank에 대한 의존도가 초기만큼은 크지가 않다. 즉, 구글 검색에서의 웹 문서 랭킹은 더이상 페이지랭크로 한정지을 수 없고, 구글랭크라고 불르는 편이 더 맞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지랭크가 웹생태계의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초기의 신화는 어느 정도 재조정될 필요도 있다.

 민주적 방법에 의한 웹 페이지들의 랭킹이라는 초기의 이상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터넷 민주주의는 희망이 있다. 더 많은 웹 문서들이 생겨날 수록, 이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웹 문서들이 서서히 그 위력을 잃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들이 Power Law를 따르기 때문에 기존의 영향력있는 웹 문서들에 대한 선호 경향 Preferential Bias을 이용해서 네트워크의 허브로의 발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단순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에 어렵다는 점을 반증한다. 그래서 웹생태계의 (풀뿌리) 대중 민주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편중된) 영향력을 분산시키거나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그런 대항력은 Sum of Power로 수식화되는 입장에서, 몇몇의 대규모 웹 소스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소규모 웹 소스들이 조직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웹생태계에서의 진정한 민주성의 회복은 자발적 개인들의 참여와 협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명시적 추천 시스템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이 웹생태계의 암묵적 추천 시스템이라면, 다음 블로거뉴스이나 digg.com의 추천버튼이나 다음 아고라의 찬/반 버튼 등의 명시적 추천 시스템은 과연 민주적인가 비민주적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추천버튼이 공개되어있고 추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민주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모든 대중들이 모든 웹문서들을 공평하게 조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주적인 것만 아니라고 할 수가 있다. 후자의 주장에서, 모든 대중이 공개된 모든 문서들을 볼 기회/권한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어떤 기준들에 의해서 선별된 웹문서들만을 조회하고, 추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즉, 블로거뉴스나 아고라에서 베스트글로 선정된 문서들은 그렇지 않은 문서들보다 조회 가능성, 그래서 추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이다. 웹문서의 조회나 추천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지난 암울했던 반세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개념으로 '평등'이라는 것은 사회/공산주의에 더 어울려서,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속성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해둘 점은 사회주의에서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 (비약적으로 말해서, 모든 문서의 조회수와 추천수가 동일해야 한다)에 가깝지만,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 (즉, 모든 문서들이 열람 가능하지만 똑같은 수만큼 조회/추천할 필요는 없다)에 가깝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렇지만 현재의 웹생태계의 많은 서비스들이 기회의 평등을 제대로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회의 불평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문서 제목 선택, 글쓰는 솜씨나 레이아웃, 주제의 시의/적정성 등과 같은 게시자의 능력이나 기존의 인맥이나 전문성 등과 같은 게시자의 명성/평판 등에 의한 (문서 열람) 기회의 불균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개념으로 본다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때로는 추천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한 기회의 불균등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노출된다거나 한 번 이상의 추천을 받은 웹문서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들에 비해서 일반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인위적인 부정클릭을 통한 추천수를 조작한다거나, 특정 키워드 (때로는 해당 웹문서와 관계가 없는 키워드)를 반복해서 검색엔진의 매칭점수를 높인다거나 거짓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페이지랭크 값을 변형시키는 그런 시도들이 있었고,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웹문서의 중요도를 평가하는데 모든 추천자들의 추천이 동일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페이지랭크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문서들에 의해서 링크된 문서들이 더 큰 점수를 부여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또 페이지랭크에서 상호링크와 경우와 같이 일반적인 추천시스템에서도 친구들끼리 상호추천을 하는 등의 노이즈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현재의 명시적 추천 시스템의 한계에 해당한다. (전자의) 일례로, 현재 다음의 블로거뉴스의 오픈에디터/열린편집자로 선정된 이들의 추천이 그렇지 않은 일반 대중들의 추천보다 베스트글을 선별하는데 더 큰 효과를 주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그리고, 때로는 추천 시스템에서의 팬덤현상도 주의해야 하다. 특정 게시자의 명성에만 의존해서 그들의 웹문서의 내용과 상관이 없이 무조건 조회/추천을 하는 현상도 존재하며, 특정 주제에 대해서 웹문서에 선호추천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례로, '미네르바'라는 아고라의 논객의 글에 대해서 팬덤현상을 일으킨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 여전히 검찰/사법부의 이상한 행동은 여전히 이해불가이며, 웹생태계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던질 뿐이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단지 팬덤현상이라는 측면에서 예로 든 것이다.)

 인터넷의 기본은 정보를 담은 웹문서들과 그것을 저작하고 즐기는 인간들 사이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렇지만 모든 피어 (peer, 웹문서 및 사용자)들이 모두 동일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이나 중요도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TF/IDF를 이용한 Okapi BM25라던가 구글의 페이지랭크 (애스크의 엑스펄트랭크나 트러스트랭크 등 포함) 등의 웹문서 랭킹 알고리즘이 개발되기도 하고, 더 명시적으로 사람들의 추천행위를 이용한 웹문서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알고리즘/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다. 보통의 경우, 이런 랭킹 알고리즘들이 충분히 민주적으로 웹문서들이나 또는 사용자들의 중요도/영향도를 측정해주지만, 실제 생활에서 민주주의가 왜곡되듯이 웹생태계에서의 이런 민주적 방법에 의한 웹문서 랭킹 방법도 왜곡을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왜곡현상을 방지 또는 최소화하기 위해서 인터넷 업체들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우리 일반 사용자들의 이성적 활동 외에는 뽀죡한 방법이 없다.

 글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감이 있지만, 웹생태계에서의 민주성을 해치는 행위는 나 자신의 자율성 및 민주성도 함께 해치는 행위가 될 것이며,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다음 포스팅은 웹생태계에서의 자원의 재활용 문제나, 지속가능한 추천시스템에 대해서 적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 때는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개인 블로그에서도 이미 이 책을 소개했지만, 본 블로그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들에 많은 도움이 될 것같아서 이곳에서도 다시 소개하려 한다. 글재주가 없어서 자세한 책에 대한 리뷰는 '다음 책'의 것으로 대신하고, 여기서는 간단한 생각만을 적으려 합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새로운 소식/루머의 확산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악성 루머의 경우 좋은 소식보다 그 파급속도나 파괴력이 더욱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때로는 악의가 없이 적었던 글이 단순히 물질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죽음이라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내몰기도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목격한 바다. 고 최진실씨의 사건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또 어제 방영한 MBC 스페셜 '최민수, 죄민수, 그리고 소문' 편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됨을 보았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사실이 제대로 그리고 빨리 전파되어서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때로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 등의 많은 순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때론 사실이 과장이 되기도 하고 왜곡이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져서 어느 순간에는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사태에 이를 때도 있다. 90년대의 인터넷은 단순히 가상의 세계였지만, 21세기의 오늘날은 우리가 숨쉬는 또 다른 세상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질 수가 없다면 그런 사이버 세상을 정화하는 것도 우리들의 임무임에 분명하다.

 솔로브의 책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위 '개똥녀' 사건으로 시작한다. 한번의 수치를 거쳤듯이, 이를 바로 잡는 노력을 정진하는 것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임무인 듯하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들만이 뉴스의 생산자였지만, 오늘날에는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듯이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뉴스의 일차 생산자이며, 또 그것들을 본 모든 사람들이 또 다른 뉴스나 오피니언의 이차 생산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더 이상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재할 것같지 않은 오늘날이지만, 그럴 수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더욱더 존중되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일상 생활에서 또는 인터넷 상에서의 부주의한 작은 행동이 우리의 평판을 갉아먹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표현을 자유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나 스스로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사이버모독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안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의 안녕을 찾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